26.08.21. 무용의 나무

무용의 나무

최근 만들고 있는 ‘돌연변이의 창작법’ 시리즈에 오덕스럽다는 댓글이 달렸다. 이런 댓글 볼 때마다 아직도 기가 죽곤 하는데, 무용의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용기를 되찾는다.

무용의 나무는,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나무는 일찍이 잘려나갔지만,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간단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다.

내 콘텐츠에 댓글을 단 그 사람은 내가 길러낸 나무를 바라보며, 자신이 보기에 무용하게 여겨지는 부분을 콕 짚고 떠나갔다.

하지만, 그 사람이 하는 말에만 맞춰, 내가 앞으로 길러낼 생각의 가지를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. 내가 좋아하고 기르길 원하는 내 모습이 함부로 잘려버릴테니까.

그게 너무 아파, 방황하다가 1년 만에 이 공간에 다시 돌아왔다. 그때 내 딴에는 준비 기간이라고 여겼지만, 이렇게까지 길어진 데는 사실 그런 시선들이 두려웠던 것 같다. 돌아오면서 “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는 솔직하자. 내가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걸 만들어보자.” 다짐했다.

하지만, 역시 내가 피드에 길러낸 나무들이 남이 보기엔 무용할지 모르겠다. 내가 기르는 나무가 ‘사시나무인가?’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흔들린다. 그 생각이 지나간 후에는 다시 생각한다. ‘그래도 괜찮다.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라도 괜찮다.’ 다시 다짐한다. 하지만, 역시 이렇게 길러낸 나무가 적어도 나에겐 가장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.

그래야, 이 나무의 우듬지에 올라가 내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을테니까. 남들이 “무용하다” 라고 말할지라도, 함부로 내 생각의 가지를 잘라내지 않겠다. 지금은 무용해 보일 뿐이다. 앞으로 가능성을 믿고,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길러볼 테다.

그리고 될 수 있다면, 무용의 나무를 길러내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콘텐츠와 문화를 만들고 싶다.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, 내 콤플렉스를 풀기 위해서다.

뙤약볕에 궁둥이를 쪼그리고 앉아 무용의 나무를 기르고 있자면, 주변에서 꼭 무심한 말을 툭 던지고 지나간다. 약간 거슬리긴 해도, 그게 마음속에서 자꾸 뭉치고 쌓이니까 거대한 응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. 내 마음에 쌓인 그 지독한 냄새를 내뿜는 덩어리를, 무용의 나무를 기르기 위한 비료로 쓰고 싶다. 그리고 이렇게 길러낸 작은 나무를 들어올리며 말하고 싶다.

(“꼭 특별해야 하나요? 꼭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나요?” 진격의 거인에서 에렌 어머니 카를라가 아기였던 에렌을 안은 채 바라보며, 이 아이는 위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듯이.)

아. 이렇게 괄호 붙이고 끄적여봤지만 역시 답답하다. 응어리가 덜 풀린다. 내게 응어리를 투척한 사람들이 불쾌해할 테지만, 괄호 떼고 다시 말해야겠다.

“제가 기르는 나무가 당신들에게 쓸모없어 보일지라도,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. 쓸모없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, 제게 의미 있는 가지를 함부로 잘라내고 싶지 않거든요.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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